언제나 느끼지만 지방 방송의 로컬 다큐는 재미있는 것이 많아서 좋습니다.... 무령왕릉이 발굴된 이야기를 하는데... 이건 정말로 막장이더군요 OTL.....
1. 무령왕릉은 우연히 발견된 지 하룻만에 모든 유물을 발굴하는 일을 했습니다.금으로 만든 각종 장신구를 포함하여 도합 108종, 2906점이라는 많은 유물들이 출토, 그 중에는 국보만도 12종 17점이나 되는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2. 얼마나 이 발굴이 서둘러서 벌어졌고, 개념이 없었으면 발굴품인 석수의 경우에는 금속으로 만든 뿔이 사라지고(당일 찍었던 사진에는 있는데... 뒤에 서울에 올라가서 찍은 사진에는 없다는 -_-;) 다리한 쪽이 부러졌습니다..... (물론 발굴 당사자는 불량품이 왕릉에 있었다고 주장(?) 합니다만... -_-;
3. 더 황당한 것은 발굴 다음 날 중요 문화재 몇점이 서울에서 공개된 것입니다. 향간에는 박대통령이 보고 싶다고 해서 발굴한 담당자가 들고 올라갔다고 하는데..(이 부분은 주장에 이견이 있음 -_-;) 문제는 이게 아니라... 그 중요 문화재를 들고 올라간 방법이었습니다. 무장 호송차량이나 그냥 문화재청의 차량으로 옮긴 것이 아니라 보자기에 유물들을 싸서 그냥 버스로 올라갔습니....OTL....
4. 갑자기 하룻만에 출토된 문화재가 서울에서 공개가 되니... 공주 시민들은 난리가 났습니다.
우리 고장의 물건이 갑자기 "서울"로 가버린 셈이니, 공주 시민들 입장에서는 자기 물건을 도둑맞은 심정이었던 것이고... 때문에 당시 공주 시민들의 1/5이나 되는 1만명 정도가 시위에 참가.... 출토된 문화재의 공주 유출을 하면 안 된다고 하고... 출토 때문에 온 문화재 담당자들은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였으며, 심지어 문화재를 가지러 온 트럭들은 공주 진입 자체를 못했습니다.(당시 있었던 공주간 터널에 아줌마들이 거의 나체로 자동차를 막았다는 이야기까지 -_-;;;;)
5. 이런 강력한 시위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는데... 일단 자기 고장 물건이 다른 사람들에게 빼앗긴다는 기분도 있고, 이런 문화재 개발로 뭔가 낙후된 공주의 지방경제에 이득이 올 것이라 봤는데 그런 부분이 사라진다는 상실감도 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돌 던지고 난리가 났지만... 촛불 시위에도 국민말 안드는 요즘 어떤 분과 달리, 그 서슬퍼런 박대통령 시절이었지만 당시 무령왕릉 문화재 유출 반대 위원회 위원장과 합의 끝에 서울로 문화재 이관을 하기로 했습니다.
6. 합의가 된 후에도 바로 낮에 작업한 것이 아니라, 지역의 여론과 감정을 고려해서 새벽에야 트럭이 조심스럽게 가져갔다고 합니다.
7. 당연히 합의사항 대로 1년 후에는 공주 국립 박물관 건립 후에 서울에서 공주로 박물관으로 부장품과 유물의 이관을 했다고 하네요.(사람들 말 안드는 어떤 분과는 정말로 다르죠?)
8. 재미있는 점은 당시 운송 중에 자동차 사고로 운전자가 동맥이 끊어진다던가, 출토 당사자 부인이 급병으로 입원한다던가 여려 문제들이 생겨서 저주가 아닐까 생각도 했다고 합니다.. ^^;;;;
9. 아직 VOD서비스는 안 하고 있는데... 빨리 부산MBC에서 VOD서비스를 했으면 하네요
10. 그나저나 참 어떤면에서는 막장(...)인 시절이었다 생각도 합니다.....
1. 무령왕릉은 우연히 발견된 지 하룻만에 모든 유물을 발굴하는 일을 했습니다.금으로 만든 각종 장신구를 포함하여 도합 108종, 2906점이라는 많은 유물들이 출토, 그 중에는 국보만도 12종 17점이나 되는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2. 얼마나 이 발굴이 서둘러서 벌어졌고, 개념이 없었으면 발굴품인 석수의 경우에는 금속으로 만든 뿔이 사라지고(당일 찍었던 사진에는 있는데... 뒤에 서울에 올라가서 찍은 사진에는 없다는 -_-;) 다리한 쪽이 부러졌습니다..... (물론 발굴 당사자는 불량품이 왕릉에 있었다고 주장(?) 합니다만... -_-;
3. 더 황당한 것은 발굴 다음 날 중요 문화재 몇점이 서울에서 공개된 것입니다. 향간에는 박대통령이 보고 싶다고 해서 발굴한 담당자가 들고 올라갔다고 하는데..(이 부분은 주장에 이견이 있음 -_-;) 문제는 이게 아니라... 그 중요 문화재를 들고 올라간 방법이었습니다. 무장 호송차량이나 그냥 문화재청의 차량으로 옮긴 것이 아니라 보자기에 유물들을 싸서 그냥 버스로 올라갔습니....OTL....
4. 갑자기 하룻만에 출토된 문화재가 서울에서 공개가 되니... 공주 시민들은 난리가 났습니다.
우리 고장의 물건이 갑자기 "서울"로 가버린 셈이니, 공주 시민들 입장에서는 자기 물건을 도둑맞은 심정이었던 것이고... 때문에 당시 공주 시민들의 1/5이나 되는 1만명 정도가 시위에 참가.... 출토된 문화재의 공주 유출을 하면 안 된다고 하고... 출토 때문에 온 문화재 담당자들은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였으며, 심지어 문화재를 가지러 온 트럭들은 공주 진입 자체를 못했습니다.(당시 있었던 공주간 터널에 아줌마들이 거의 나체로 자동차를 막았다는 이야기까지 -_-;;;;)
5. 이런 강력한 시위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는데... 일단 자기 고장 물건이 다른 사람들에게 빼앗긴다는 기분도 있고, 이런 문화재 개발로 뭔가 낙후된 공주의 지방경제에 이득이 올 것이라 봤는데 그런 부분이 사라진다는 상실감도 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돌 던지고 난리가 났지만... 촛불 시위에도 국민말 안드는 요즘 어떤 분과 달리, 그 서슬퍼런 박대통령 시절이었지만 당시 무령왕릉 문화재 유출 반대 위원회 위원장과 합의 끝에 서울로 문화재 이관을 하기로 했습니다.
6. 합의가 된 후에도 바로 낮에 작업한 것이 아니라, 지역의 여론과 감정을 고려해서 새벽에야 트럭이 조심스럽게 가져갔다고 합니다.
7. 당연히 합의사항 대로 1년 후에는 공주 국립 박물관 건립 후에 서울에서 공주로 박물관으로 부장품과 유물의 이관을 했다고 하네요.(사람들 말 안드는 어떤 분과는 정말로 다르죠?)
8. 재미있는 점은 당시 운송 중에 자동차 사고로 운전자가 동맥이 끊어진다던가, 출토 당사자 부인이 급병으로 입원한다던가 여려 문제들이 생겨서 저주가 아닐까 생각도 했다고 합니다.. ^^;;;;
9. 아직 VOD서비스는 안 하고 있는데... 빨리 부산MBC에서 VOD서비스를 했으면 하네요
10. 그나저나 참 어떤면에서는 막장(...)인 시절이었다 생각도 합니다.....
